• 작가 : 정해연
  • 쪽수 : 280쪽
  • 가격 : 15,500원
  • 출판사 : 위즈담하우스
  • 출판일 : 2024년 5월 16일
  • 독서일 : 2025년 6월 20일

 

필자가 느낀 점

 

[홍학의 자리], [선택의 날]에 이어, 세 번째로 정해연 작가님의 장편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번 책의 제목은 [용의자들]입니다. 제목을 통해 이 책이 일련의 사건을 기반으로 진행될 것을 예측할 수 있었고, '용의자(단수)'가 아닌 '용의자들(복수)'이라는 점에서 여러 사람이 용의선상에 오르며 그들 중에서 진짜 범인을 찾아내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자연스레 [홍학의 자리]가 떠올랐습니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 다현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실제로는 주변 상황과 여러 사람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린 '사회적 타살'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또한, 표지의 어두운 분위기로 보아 경쾌하기보다는 미스터리하고 진중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소설은 비닐하우스에서 목이 졸린 채 발견된, 품행이 단정했던 여학생 '유정'의 죽음을 추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각 장이 명확하게 구분되기보다는,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상황이 서술되고 독자들은 그 사건을 쫓는 경찰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됩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한수연: 유정의 가장 친한 친구로, 소설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인물입니다. 이혼 가정에서 살고 있으며, 무뚝뚝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유정에 대한 은근한 질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민혜옥: 유정의 담임 선생님입니다. 무능력한 남편과 함께 살면서 금전적,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살인 당일 유정에게서 저녁 10시 상담 신청을 받았지만, 깊은 스트레스로 응답하지 못했다가 그 후에도 마음이 쓰여 다시 통화해 상담을 진행합니다.
  • 현강수: 유정의 아버지로 현재 이혼 상태입니다. 사업 실패로 가족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위장 이혼을 한 상태이며, 무기력한 엄마에게 의지하지 못하는 유정의 유일한 안식처나 다름없었습니다.
  • 김근미: 유정의 남자친구 '승원'의 어머니입니다. 남편과 사별한 안타까운 사연의 소유자이지만, 부유한 시어머니 밑에서 아들 '승원'을 최고의 아들로 키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집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 허승원: 살해당한 '유정'의 남자친구입니다. 살해당하기 며칠 전 헤어진 상태였다고 하며, 경찰은 승원과의 관계에서 벌어진 어떤 일이 모든 사건의 기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물은 소설이 끝나기 직전, 즉 작가가 허락하는 그 순간까지 누가 진짜 '유정'을 죽인 범인인지 확신할 수 없도록 교묘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유정을 미워할 만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고, 이 중 누가 범인이라고 밝혀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소설 내내 받게 됩니다.

 

새삼 다시 한번 정해연 작가님의 인물 설정 능력에 감탄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선택의 날]에서도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해석하게 만들었던 그 필력이, 여러 용의자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 책과 같은 구성에서는 그야말로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각 인물은 모두 추악한 비밀을 하나씩 품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비밀은 중반부에, 또 다른 누군가의 비밀은 마지막 순간에 밝혀집니다. 그래서 '아, 이 사람이 범인이구나'라고 생각하다가도, 다음 인물의 이야기가 나오면 '아니, 이 사람이 범인이었네'라며 계속해서 의심의 대상을 바꾸게 되는,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하자면, 이 책의 최종적인 피해자는 '유정'과 '유정의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만약 책이 50페이지만 더 길었다면, 작가님은 그들의 비밀 또한 준비해두지 않았을까? 논리적 흐름이 만족되는 선에서 인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끊임없이 부여하는 대가(大家)라면 당연히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마저 조금은 희미해지는 듯한 기묘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직 리뷰할 정해연 작가님의 책이 몇 권 더 남아 있습니다. 다음 독후감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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